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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先正退溪簡帖後

  • 이동구
  • 2009-05-01 오후 5: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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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先正退溪簡帖後 


正廟御製


朱子見蔡君謨一帖亟稱其字字有法度如對正人端士予於是帖亦云雖然帖凡八卷而先正操存之密講學之切與夫處己接物之方辭受取予之節大略具於尋常尺牘之間其平日之所養未始須臾離於敬義誠明之域卽可知己宜其茵藹緹油作程遐世嚴如鄕黨之畫寶若齋箴之畫此則又豈君謨之帖所能幾及哉抑予之厚幸於斯文者則有之先正遠矣近年以來異端曲學雜然競起視名敎無異笆籬視綱維甚於贅疣以放誕詭怪爲神奇甚至所謂西洋之說而其誣斯民惑斯世也滋多特嶠南一隅沐儒先之化存鄒魯之風相與危坐而稱之正領而誦之者無不經之篇非聖之訓予爲是興感伻官侑爵於俎豆之所而是帖出或者天意以是帖當一治之運而先正之精神咳唾猶可以衛道息邪於百餘年之久歟仁人之利亦云博哉予安得不表章是帖嘉與吾黨之士共守之也遂書歸其後幷頒新印三經四子書俾多士知所尊閣而楷範焉不曰聖人爲天口賢人爲聖譯乎出於此則非吾所謂道也

      時予御極之十有八年甲寅春 書


사문수간1) 어제발문師門手簡 御製跋文

조선 22대 임금 정조2) 지음


주자朱子[1130.10.18~1200,중국송대유학자. 주자학을 집대성, 자 元晦·仲晦. 호 晦庵·晦翁·雲谷山人·滄洲病叟·遯翁. 이름 熹]께서 채군모蔡君謨[1012-1067, 宋나라사람. 名 襄, 字 君謨, 諡號 忠惠, 著書 "茶錄", "蔡忠惠集"外]의 한 서첩書帖을 보고서 누누이 칭찬하시기를 ‘글자 하나하나마다 법도가 있어서 올바른 사람과 단정한 선비를 대하는 듯하다’고 하셨는데, 내가 이 서첩에서 또한 그러하다. 서첩은 모두 여덟 권이지만 선정先正(조선시대 훌륭한 선비, 여기서는 퇴계선생 임)께서 마음을 바로 잡던 세밀함과 학문을 강론하던 절실함과 처신하며 남을 대하시던 방법과 사양하시며 수락하시며 취하고 주는 절도가 이 평범한 편지 안에 대략 갖추어져 있다. 그 분이 평소의 기른 바가 처음부터 경의敬義와 성명誠明의 영역瑩域에서 잠시라도 떠나지 않았음을 곧 알 수 있으니 마땅히 선정先正의 거룩한 자취를 뒷날에도 길잡이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엄숙하기는 향당에서의 구분과 같고 보배롭기는 재잠齋箴에서의 구분과도 같아서 이 점이 또 어찌 채군모蔡君謨의 서첩이 미칠 수 있는 바이겠는가?

그런데 나는 유학자儒學者의 은혜를 깊이 입었으되 선정先正의 시대와는 멀도다. 근년 이래로 이단곡학異端曲學[天主敎]이 잡스럽게 다투어 일어나 명교名敎[儒敎]를 쓸모없는 것처럼 보고 강유綱維(나라의 법도)를 군더더기보다 지나치게 여기며 허튼소리로 이상異常함을 신기神奇롭다 하며 심지어 게다가 서양의 학설은 우리 백성을 속이고 우리사회를 현혹眩惑하게 함이 더욱 많도다.

 다만 영남지방은 선유先儒의 교화를 입어 추로鄒魯의 기풍이 남아 있어서 서로 더불어 단정히 앉아 일컬으며 옷깃을 여미고 외우는 것이 經典의 내용이거나 성인의 가르침 아님이 없다. 내 이 때문에 흥겹게 느껴 관리官吏를 보내 사당祠堂[尙德祠]에 제물을 드리게 했더니 마침 이 서첩이 나왔다. 아마 하늘이 이 서첩으로써 한 번 다스림의 운세를 당하여 선정先正의 정신과 가르침이 백여 년이 되도록 능히 참된 이치를 지키고 간사함을 물리쳐 주심이리라. 어진 사람이 이롭게 함이 또한 넓도다! 내 어찌 능히 이 서첩을 표창하여 우리선비들과 기뻐하며 함께 지키지 아니하랴.

 드디어 이 글을 써서 보내고 그 뒤에 아울러 새로 인쇄한 삼경三經[詩經.書經.周易]과 사서四書[大學.論語.孟子.中庸]를 나누어주니 많은 선비들로 하여금 숭상하고 본받을 바를 알게 하노라. 성인聖人은 하늘을 대신해 말씀하고 현인賢人은 성인의 뜻을 전달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여기에서 벗어난다면 내가 말하는 바 도가 아닌 것이다.


내가 등극한 지 18년째 되는 갑인년(1794) 봄에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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