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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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선조7년(1574) 서원을 건립하여 퇴계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이듬해인 선조8년(1575)에 한석봉이 쓴 편액을 국  왕이 하사하였으며, 광해군 7년(1615)에 이르러 사림이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선생을 종향(從享) 했다.

사적 제170호로 지정된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 7)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퇴계 이황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도산서당 뒤에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고, 이듬해인 1575년(선조 8)에 사액되어 석봉 한호가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았다.

1615년(광해군 7)에 이르러 사림이 월천 조목 선생을 종향하여 매년 춘,추로 향사하고 있다. 도산서원은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는 동시에 영남 유림의 정신적 중추 구 실을 하였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 당시에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경내의 건물은 상덕사, 전교당, 전사청, 동재, 서재, 광명실, 장판각, 도산서당, 역락서재, 농운정사, 진도문, 유물전시관인 옥진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퇴계 선생은 1557년(명종12)에 이곳에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승 법련을 시켜 짓기 시작하여 1560년(명종 15)에 승 정일이 완공하였다. 이때 지은 서당은 3칸으로 가운데 방은 완락재라 명하여 거처하시면서 많은 제자를 가르쳐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곳이며 농운정사는 공자형팔간방으로 지어 문하생들이 공부하는 강실로 사용한 곳이다. 전교당

상덕사는 정면3칸, 측면2칸의 단층 와가로써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건물 전면에는 반칸 후퇴하여 평주 4개를 설치하였으며, 평면 구성은 매우 단순하여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마루방을 꾸미고 신위를 모셨다.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시설하였고 마루 위에는 여러 겹의 왕골자리를 깔아 신성한 장소로서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퇴계 선생의 위패는 주벽에 모시고 월천 조목 선생의 위패는 동벽에 모셨다. 전교당은 유생들이 강학을 하던 곳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구성하였다.
좌측면은 2통 간 온돌방으로 구성 하여 한존재라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6칸은 모두 우물마루로 대청을 구성하였다. 동재와 서재는 원생들이 기숙하면서 강학하던 곳으로 전교당 앞에 대향배치되어 있으며 각 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집으로 되어 있다.

도산서당은 원래 정면 3칸, 측면1칸 규모였으나 후에 좌우퇴간을 증설 하여 현재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도산서당

퇴계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셨던 방은 완락재이며 제자를 가르쳤던 마루는 암서헌으로 바위에 기대어 조그마 한 효험이라도 바란다는 학문에 대한 겸손의 뜻이 담겨져 있다.
동서광명실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이며 광명은 수많은 책이 나에게 서광을 준다 라는 뜻이고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광명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규모로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2층 누각 건물로 지어졌다. 이곳에는 1,300여종에 5,000여권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장판각은 서원의 출판소이며 퇴계 선생 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 12곡,선조어필 등의 목판각이 37종 2,790장 보관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한국 국학 진흥원이 설립됨에 따라 그 곳에 위탁하여 보관하고 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집이다.

전사청은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마련하여 두는 곳으로써 제수청과 주고가 있다. 이 건물은 동서의 두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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